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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강이어디있으랴

참선

 

 

앉고 싶으면 앉고, 서고 싶으면 서고,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하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는 게 그대로 참선이다.

 

참선이란, 일체만법이 주인공 자리로 나고 드는 것을 믿어, 일체를 그 자리에 놓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참선은 가능하다. 믿음으로 놓고 맡기는 한, 일상생활이 그대로 참선이다.

 

내 근본, 주인공을 믿어, 일체를 그 자리에 맡겨 놓는다는 것이 처음엔 아주 막연하고 어려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아무런 방편도 주지 않고 그냥 거두절미한 채로 맡기라고 하니까 도무지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사람도 있다.

 

우선 틀고 앉는 방편이라도 있어야 공부가 될 것 같이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몸이 앉는다고 마음이 앉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참선을 해야 참선이다.

 

문제를 마음에서부터 풀기 시작해야지 몸을 움직여 마음을 잡으려 한다면 그것은 거꾸로 된 것이다. 시작부터 마음에서 하라.

 

그 다음도 ‘거짓 나’에서가 아니라 ‘참나’에서 하라. 마음이 그 시작이 아니면, 그것은 그림자를 붙잡는 것과 같아 헤매기만 할 것이다.

 

간절하고 지극한 믿음이 끊어지지 않는 묵연한 수행이, 곧 참선이다. 이런 참선이 진짜 참선이며, 語默動靜에 구애됨이 없는 活禪이다.

 

날마다 마음의 引燈을 밝혀라. 禪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나가면서 ‘나’라는 상을 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주인공에 맡겨 놓고, 三界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동요치 않는 것이 바로 바로 참선이다. 참선은 믿음이 근본이다. 자기 주인공, 자성에 대한 믿음이 그 근본이다.

 

주인공에게 갈구하며 그 자리에서 답을 찾기 위해 안으로 굴리는 것을 명상이라 하기도 하고, 조용한 곳을 택해 가만히 앉아서 명상하는 것을 참선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24시간 중에 잠시 주인공을 잊는 때가 있다 해도, 자기를 움직이게 하는 마음의 원동력이 있음을 알아 문득 떠올리면, 잊은 사이 없이 그대로 이어지게 되니, 일상생활이 그대로 참선이 된다.

 

요가든, 명상이든, 좌선이든 몸으로 하는 수행방법이야 천차만별로 많을 수 있겠지만, 마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런 수행이란 아무 소용이 없다.

 


길을 묻는 이에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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