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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강이어디있으랴

*수행정진

 

올바른 수행


오로지 自性을 스승으로 삼아라.

자성이 있음으로 해서 일체만법이 돌아가니 마음의 기둥인 자성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밖에서 찾아서는 절대 안 된다.

 

이 공부는 자기가 가르치고 자기가 배우는 것이다. 자기가 놓고 자기가 받으며, 자기가 항복하고 자기가 항복을 받는다. 마음을 닦는 것이 이와 같이 결국 자기와 자기 자신과의 일인 것이다. 그러니 밖에서 찾지 말고 밖으로 끄달리지 말라.

 

허공을 쳐다보며 ‘나를 구원해 주소서.’ 한들 백년 천년이 가도 소용이 없다. 이름을 부르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려 보아도 그것은 헛말에 불과하다. 신은 내 안에 있으니 밖으로 청해 보았자 대답이 있을 리 없다. 내면의 불을 켜지 않는다면 제대로 보지 못해 모든 일이 천방지축이 될 뿐이다. 하느님 부처님 관세음보살을 밖에서 찾는다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을 것이다.

 

꽃은 조건만 맞으면 절로 피어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기 꽃나무를 잘 살피어 꽃이 피어날 수 있게 노력하기보다는, 어디 눈이 번쩍 뜨일 특별한 방법이 따로 있는가 싶어 밖으로 찾아 헤맨다. 내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그 어느 곳에서도 특별한 방법을 찾을 순 없다. 먼저, 마음의 중심을 세우고 밖으로 도는 생각을 안으로 돌리도록 하라. 다른 사람의 깨달음에 황홀하여 달려가지 말고, 내 안에서 깨달음의 꽃이 피어나도록 하라. 모든 것은 이미 내 안에 다 갖추어져 있으니 절로 피어나도록 도와주기만 하라.

 

수행자에게 내일은 없다. 오직 ‘지금’이 있을 뿐이다. ‘내일은 좋아지겠지, 모레면 잘되겠지.’ 하고 미뤄서는 안 된다. 오늘을, 이 순간을 깨어있는 정신으로 직시하면서 묵연한 코끼리 걸음으로 걸어가야 한다. ‘지금’, ‘여기’가 바로 삼천대천세계의 근본자리이며, 바로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자 영겁의 시간을 머금고 있는 자리이다. 고로 수행자가 맞이하는 하루하루 순간순간은 그대로 영원이요, 무한이다. 오늘이 세상에 났으면 오늘 해야 할 일, 오늘 하고 가야 된다.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는 발걸음으로 걸어가라. 닥치는 모든 일에 대해 어느 것 하나 마다하지 않고 긍정하는 대장부가 돼라. ‘무엇을 구한다, 버린다, 안 버린다’ 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는 인연 막지 않고 가는 인연 붙잡지 않는, 대수용의 대장부가 돼라. 가장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대장부가 돼라. 대장부 걸음걸이는 한걸음에 천리를 뛰는데, 졸장부 걸음걸이는 백 리를 뛰어도 한걸음 뛴 것만 못하다.

 

수행은 쉼이다. ‘어서 성불해야지, 빨리 중생고에서 벗어나야지.’ 라는 마음이 뭉게뭉게 일어난다면, 여유로워야 할 마음이 도리어 반대로 흐르게 된다. 잡으려고 하면 갈수록 멀어지고, 푹 쉬면 제 발로 찾아오는 게 수행의 묘법이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자기 자신에 대해 정직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근본이 곧 부처의 자리요, 부처의 자리는 모든 관념이 다 사라진 空한 자리이니 이 자리에서는 어떤 속임수나 변명, 합리화 따위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일이 가장 좋다, 사량으로 계획을 세워 무엇이 되게 하기에 앞서, 오직 믿고 맡김으로써 근본자리에서 일이 되게 해야 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누구나 해결할 수 있다. 체험을 하게 되면 당신은 당신 자신의 무한한 능력에 눈을 뜨게 되고 자신에게 저절로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나같이 평범한 중생에게 어찌 본래로 무량한 공덕이 갖춰져 있을까 하고 행여라도 의심치 말라. 바로, 그러한 退屈心퇴굴심이야말로 중생을 끝내 중생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물이 흐르는 것을 보라. 가다가 구덩이를 만나면 채우고 다시 흐른다. 바위나 언덕을 만나면 끼고 돌아 흐른다. ‘참나’를 찾는 공부도 그와 같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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