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주인공에 놓고 관하다 보면, 차츰 인과도 무너지고 습도 녹아지며 나를 발견하게도 되고 일체를 항복 받을 수도 있다.
주인공은 우체통이다. 넣고 지켜보면 배달되고 답장이 온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고 물어 일체를 놓아야 한다고 하니까, ‘놓고서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놓았기 때문에 참으로 살 수 있는 법이다.
중생은 일일이 생각을 지어서 일을 해야만 이치에 맞는 줄로 여겨 마음을 그렇게 쓰지만, 도인의 마음씀은 일일이 생각을 내지 않고 푹 쉬어 있으면서도 조금의 빈틈도 없이 법에 맞게 산다.
놓음으로서 나오는 行은 생각을 지어서 하는 그 어떤 행보다도 더 원만하고, 자연스럽고, 깊고, 아름답고, 진실하고, 이익된 행이 된다. 그러기에 참된 수행자의 일상생활은 그대로 道 아닌 게 없다. 行住坐臥가 그대로 법에 맞기 때문이다.
특정한 방편을 세우게 되면 우선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듯 하겠지만, 가면 갈수록 아물아물해져서 결국은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놓고 맡기는 공부를 경험해 보면 처음엔 좁아 보이기만 하던 길이 점차로 넓어져서, 마침내는 큰 문이 되어 준다.
다 놓고 돌릴 때 그 공덕은 무한량이다.
첫째로, 번뇌 망상으로 꽉 찼던 그릇이 비게 되면서 마침내 빈 것도 없고 담긴 것도 없는 그러한 상태가 되어 바로 ‘참나’가 발견된다. ‘참나’가 발견된다는 것은 그때부터 기초가 튼튼해졌다는 뜻이니, 바야흐로 집을 짓는 기둥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인연 따라 억겁 전생부터 내려온 모든 습이 녹게 되며, 셋째로, 일체의 五無間 지옥이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