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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자유인

영원한 자유인으로 가는 길 14, 보살의 제도방편 한 가지?

*수행의 과정을 거쳐서 불과를 이루고 나면 보살은 어떻게 중생을 제도해 나가시는지요?

 

"보살에게는 보고 듣고 행하는 일 모두가 다 중생제도입니다."

 

*그런데 그런 경지에 오르신 분이 한 시대에 한 분만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한 시대에 그런 보살님들이 많이 탄생되는 거야 말할 나위도 없는 복된 일이겠지만 국가나 세계의 문제들에 대해서 그분들이 언제나 꼭 같은 뜻을 내시게 될는지요?

 

참에서 살리는 것

"법의 세계는 넓고도 넓습니다. 한 시대 한 국가로서는 다 포함할 수 없을 만큼 말입니다. 예컨대 불보살이 징계를 내릴 때도 있습니다. 보통 좋은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시지만, 정 보다 못해 법의 철퇴를 들어 내리치실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징계요, 철퇴라는 것은 말이니까 그렇지 그 또한 자비요, 중생을 위한 선교방편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죽이는 철퇴이자 동시에 살리는 손길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중생은 죽는 것을 정해 놓고 나쁘다고만 합니다. 죽는 것이 진실에 있어서는 좋을 때도 있다는 걸 모릅니다. 왜냐하면 중생은 겉만 보고 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마음입니다. 육신이 죽어도 죽어질 수 없는 마음, 자기가 지은 행위로부터는 그 어디로도 도망을 칠 수 없는 이 마음, 그래서 마침내 깨닫는 그때에 가서야 해탈이 되는 이 마음의 진화만이 가장 소중한 단 한 가지의 일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냐 하면 목숨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소중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타락시키느라고 애쓰는 못난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복되지 못하고, 남에게도 해가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지요. 얼핏 보기에는 그것이 제 육신을 살찌우니까 복이라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 욕심이 정작 중요한 주인(마음)을 해칩니다. 비유하자면 자기 집을 짓는 사람이 집을 제법 멋지게 짓긴 했으나, 거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몸을 상하여 낙성식 날 죽었다고 할 때, 그 아름다운 집은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집은 주인의 것이요, 주인에게 편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 주인에게 봉사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 집의 노예가 된 꼴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육신을 위하는 탐욕으로 마음을 타락시키는 사람은 종살이를 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찬란한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그것은 집이 그럴 듯해진 것일 뿐 정작 집주인은 그 사이에 다 늙어버린 꼴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엇이 참으로 중요한지를 모르는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 중에는 욕심이 지나쳐서 남에게 해를 끼치기까지 합니다. 그럴 때 불보살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를 내리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에게는 화(禍)가 아니라 오히려 복인 것입니다. 그 때 보살은 그의 무명을 친 것이지, 그의 참 생명을 친 것이 아니니까요.

 

이때 생명은 육신을 지탱하는 그 생명이 아니라 우리의 참생명, 육신이 수십만 번을 죽어도 결코 죽지 않는 참생명을 말합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그 참생명입니다. 그 참생명으로 눈뜨기 위해서라면 육신을 몇번이나 버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이치가 불보살에게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치는 의식 없이도 저절로 그렇게 살려 쓰여집니다. 그러므로 불보살의 경우에는 겉보기엔 죽이는 것도 참에서는 살리는 것이요, 살리는 것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런 이치가 한 국가나 한 세계에 두루 작용하므로 여러 불보살의 의지가 서로 합쳐서 빛을 발할지언정 서로 부딪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