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안에는 부모, 조상이 다 계시고 보살, 신중(神衆)이 다 계시다. 그러니 생활하면서 다가오는 모든 일을 간절하게 마음 안으로 고하면 삶이 그대로 부모 모시는 제사요,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재(齋)가 된다.
형식으로만 조상님을 공양한다면 조상님의 중생적 모습만 보고 조상님의 참모습인, 모습 아닌 그 모습은 보지 못하는 것이 된다. 참수행자라면 조상님께 감사하는 생각을 하되, 늘 자기의 근본과 조상님의 근본이 둘이 아닌 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제사를 지낼 때 나와 조상이, 나와 부처가 근본으로 하나인 줄 안다면, 그 마음으로 인해 전체가 하나로 돌아가는 이 광대무변한 법을 조상들도 다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에 촛불도 있고 향도 있고 청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의 도리를 몰라 일일이 격식을 차려야만 제사를 지내는 거라고 한다면, 그것은 조상을 위하는 것도 아니요,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재의 진정한 의미를 모독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상과 자신을 우습게 만드는 것 밖에는 안 된다.
천도는 누구든지 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즉, 둘이 아닌 도리, 空의 도리, 나툼의 도리를 얼마만큼 깊이 있게 깨닫고 行할 수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그 결과가 확연히 달라진다.
천도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
첫 번째는 마음도리를 모르면서 단지 예식에 맞춰 경을 따라 외우며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재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 마음도리를 알아 일체를 다 근본자리에 맡겨 놓되, 마음 내는 능력이 달라 거기에 따라 천도가 이루어지게 된다. 세 번째는 일체 제불의 마음과 모든 조상들의 마음이 둘이 아닌 까닭에 한자리에서 모든 것이 나고 들며 일체가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줄을 알아, 따로 재를 지내고 할 것도 없이 천도되는 경우이다.
깨달은 분들은 구태여 예식을 차리지 않아도 영가를 천도 시킬 수 있다. 이때, 이러한 차원에 있는 분들이 영식(靈識)을 본다 함은, 죽을 당시에 머물러 있는 의식차원이나 갇혀 있는 의식차원 등, 어떤 고정되어 있는 의식차원을 보는 게 아니라 살아생전의 마음자리 전부를 보는 것이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죽기 직전 가졌던 분노, 집착, 고통 등과 같은 이유들로 인해, 살아생전에 지녔던 전반적인 의식차원보다 낮은 차원에 들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이 강할 경우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그 의식차원에 그대로 머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죽기 전, 본인이 살면서 지은 모든 나쁜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근본자리에 그대로 놓아야 하는 것은 물론, 일체를 진심으로 그 자리에 회향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천도는 영가가 살아생전 전반적으로 어떠한 의식차원을 가졌었느냐에 따라, 앞 못 보는 장님을 이끌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또 잠시 감았었던 눈을 뜨게 하여 스스로의 상황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천도 이후 영가들이 가는 길은 제각각 다르다. 살아 있을 때 마음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에 따라, 닦아 놓은 공덕이 어떤지에 따라, 차원대로 가던 길을 가게 된다.
수억겁 동안 살아오면서 지어놓은 조금의 인연공덕이라도 있어야 마음이 통신이 되어 천도를 통해 무명이 벗겨지고 자유권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 그렇기 때문에 體가 있을 때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천차만별이듯이, 이 도리를 모르고 죽은 사람들의 마음 또한 다양한 차원을 가지고 있으니, 한 번의 천도로 그 얽히고설킨 무명을 다 푼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정성을 다한 형식도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것을 근본자리에 맡겨 놓고 천도를 하면, 일체 제불의 마음과 조상님들의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한데 합쳐져 큰 밝음이 되어 한 찰나에 천도가 된다. 이 마음의 도리를 알아 원력이 단단해졌을 때는, 내 마음이 조상의 마음과 이미 한자리하고 있는 것이라, 그대로 천도가 된다. 촛불하나 안 켜 놓아도 마음으로 밝은 인등을 켠 것이니, 그 인등 속에서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천도재를 하면서도 부처님의 마음과 재를 지내는 사람의 마음과 또 그것을 받는 조상의 마음이 한자리인 줄을 믿지 못하다면, 믿지 못하는 것만큼 천도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모두를 내 몸같이 생각하고 내 아픔 같이 생각하여, 어떠한 차원의 영혼이라도 한마음으로 보듬어 안아 나로 만들어 다시 내놓는다면, 그것이 바로 천도이다.
천도를 하게 되면 조상뿐만이 아니라 자손에게도 활짝 문을 열어주게 된다. 수억겁을 내려오면서 먹고, 싸우고, 죽고 하면서 살아나온 마음을 한마음에 집어넣어 모든 걸 맡기고 돌아가니 일체가 空한줄 알게 되며, 또 마음이 에너지로 충만해지니 업식이 차츰차츰 소멸하게 된다.
그러면 조상도 모두 문을 열어 귀가 트이고 눈을 뜨게 되니, 돌아가신 조상과 재를 지내는 후손의 마음이 다 편안하게 완화되어 자기를 밝게 볼 수 있게 되고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