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자유인으로 가는 길 23, 기도와 다른 점이란?
*그럴 경우 조금 전에 이야기한 기도와 비슷해 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거울에 사물 비치듯이
" 다르지요! '이것을 낫게 해 주십시오!' 라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 때는 나와 기도받는 상대가 따로 있습니다(예컨대 2촌 간). 그런데 이 경우는 '내가 지금 아프잖아? 아프면 돼?' 뭐라고 할까요? 내가 나에게, 같이 아픈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나의 이기심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뭐라 말할 수 없이 진하고 아픈 심정에서 말 아닌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말이라지만 거울에 사물이 비치듯이 비쳐지는 그런 마음의 말이지요. 그러니 그것은 기도와는 다릅니다(1촌 간, 무촌 간). 왜 이런 법을 가르치느냐 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 복된 길에 들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중생이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과정을 넘어서면 떳떳하고 의연한 자세를 갖춘 수행자로서 오직 믿고, 觀할 뿐이고, 묵묵히 자기 발밑만 보고 걸을 뿐이겠군요.
"주인공을 본 사람이야 이를 나위도 없는 일이지요. 그런 사람은 아무 관념이 없이 '그냥'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삶이란 얼마나 힘든 여정이겠습니까? 그래서 그 힘든 짐을 덜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마음을 가지다 보면 우선 자기 자신이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위해 주게 되며 화목할 수밖에요. 그러면 조금씩 조금씩 세상은 행복해질테니 이 또한 부처님 법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것이 곧 보살도가 아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불도를 가리켜 초중종(初中終)의 善이라고 하셨습니다. 불법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그 끝도 좋은 가르침이라는 뜻이지요, 또한 불도의 요체를 일러 흔히 上求菩리 下化衆生이라고 말합니다. 이 때의 상구보리는 자리(自利)요, 하화중생은 이타(利他)의 뜻이 되는데, 그렇다면 불법은 내게도 좋고 세상(他)에게도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정리해 보면 불법은
시간적으로 : 처음과 중간과 끝이 모두 좋은 가르침
공간적으로 : 나와 이 세계가 함께 좋은 가르침. 이 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좋은 불법을 마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고진감래(苦盡甘來)라든가 흥진비래(興盡悲來)라는 말이 있듯이, 언젠가 좋기 위해서는 언젠가 힘들어야 하는 것이 세간법입니다. 그리고 또한 내가 좋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누군가가 좋기 위해서는 내가 손해를 보아야 하는 것이 세간법이지요. 이런 세간법에 비추어 초중종의 선이요, 자리이타의 길인 불법이야말로 그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길이겠습니까? 바로 그런 점을 큰스님께서는 긴 시간동안 세세하게 일러 주셨습니다. 이번 대담해 응해주신 큰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대담 내용이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쁜 빛이 되고, 확실한 삶의 나침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끝으로 결론 한말씀만 부탁드립니다.
"..."(미소)*
이처럼 즐거운 사경은 처음입니다. 도저히 끝내지 않고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덕분에 신나고 행복했습니다. 제 공부가 어디쯤에 와 있는지 알게 되니 더욱 행복했는지도 모릅니다. 죽어도 법 살아도 법, 그 육중한 부처님 법의 요체, 참나 주인공! 오직 믿음, 튼튼한 믿음 만을 더욱 배가해야겠다 다지며, 늘 깨어있는 진정한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모두 행복하시길 두손 모우며 더욱 정진하겠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