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成佛)
두 번째 죽음의 단계에서 수행자는 신묘한 능력을 지니게 되나, 그것도 또한 놓아 버려야 할 경계 중의 하나이니, 오신통이 오면 오는 대로 자기 근본에 놓고 가야 된다. 이미 무엇이 다가오든 무심으로 놓아버렸으므로 흔히 말하는 영통자(靈通子)와는 다르다.
수행의 결과로써가 아니더라도, 소위 神通力을 지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둘 아닌 도리를 모를 뿐 아니라, 근본에 놓아버리는데도 익숙지 않으므로 ‘이거야말로 보물을 지니게 되었구나.’ 하게 된다. 결국 많은 경우 점쟁이나 미치광이가 되고 말 뿐이다.
일체의 마음이 결국 내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알아 신통력까지도 내 근본마음에 돌려놓으면 無心이 된다. 여기에서 무심이란, 마음이 빈 공허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있기는 있으되 스스로 고요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무심의 경지에서는 이미 ‘내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문제가 붙질 않는다. 이때의 ‘나’는 중생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나로서, ‘나’라고 하는 존재는 없다고 하는 것이 맞겠으나, 그러면서도 생활하고 있으니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된다. 말하자면, 무심하다는 그것마저도 없는 텅 빈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무심까지 녹은 空이라, 그대로 누진통인 것이다.
오신통: 불교의 六神通중에서 누진통을 뺀 다섯 가지의 신통, 천안통은 보는 사이 없는 볼 수 있는 능력, 천이통은 듣는 사이 없이 들을 수 있는 능력, 타심통은 다른 사람 마음을 아는 사이 없이 알 수 있는 능력, 숙명통은 과거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아는 사이 없이 아는 능력, 신족통은 한 찰나에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올 수 있는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