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見性)
마음공부의 첫 번째 단계는, ‘중생으로서의 나’를 주인공 자리에 되놓음으로써 ‘참나’를 알게 되는 데까지이다.
이때 수행자는 한 번 죽는 것이고, 동시에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모름지기 수행자는 마음의 중심을 주인공에 두고 밖으로 확산되는 사량심을 거두어들여 일체 경계를 주인공에 맡겨야 한다.
나의 근본인 주인공이야말로 나의 시작이요 끝이며, 또 영원하고 무한하다는 것을 알아 그곳에 일체를 맡겨 놓아야 한다. 고로, 이 단계에서는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지극하고 간절해야 하며, 또 경계에 끄달리는 마음을 매 순간 끊임없이 놓아야 하므로 대단히 큰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중생으로서의 나’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단계는 ‘사량심을 짓는 나‘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공부이다. 이 공부가 깊어져서 지극하고 순수하게 되면 三昧중에 참 성품이 저절로 발현된다. 마치 잉태되었던 아기가 태어나는 것과 같다. 이때의 단계를 ’중생으로서의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곧, 죽음이지만, 주인공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기는커녕 탄생이 된다. 그리하여 참 성품이 발현하게 되면 형언할 수 없는 法悅법열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 주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진정한 공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참나’를 발견했다 해도 그 상태에서 다시 닦아 나가야 한다. 이때가 상당히 어려운 시기이다. ‘참나’를 알고 경계에 걸림이 없으니 마음이 아주 편안한 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인가 보다.’ 하고 거기에 머물기가 쉽다.
무엇보다도, 말로 할 수 없는 온갖 고비를 넘기며 그 상태에 이르렀기에 아주 기쁘고 반가우며, 또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다디단 생명의 샘물을 마시며 사는 격이라, 스스로 대견하게 여길 뿐, 더 높은 차원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게 된다.
더 높은 차원은 아직 보지도 듣지도 못했으므로 생각도 해 볼 수 없지만, 아래를 보면 많은 사람이 보이니 거기서 자기가 제일인 줄 알고 우쭐하기가 쉽다.
위쪽은 어둡고 아래쪽만 환하여, 이때 수행을 그르칠 가능성이 많다. 몰락 한꺼번에 깨우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갖가지로 살아오던 습이 너무도 많아 한꺼번에 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꺼번에 놓는다는 생각도 말고, 닥쳐오는 대로 그냥 놓음으로써 체험하고 보임할 줄 알아야 한다. ‘주인공에 맡겼다.’ 하면 벌써 업이 녹고 습이 떨어져, 놓고 또 놓는 중에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홀연히 깨우쳤다고 해도 깨우쳤다고 일 만들지 말고, 경계와 더불어 둘 아님이 없이 또 다시 죽어야 한다.
큰스님! 가르침, 너무나 감사합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