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과학
현대과학문명이 아무리 고도화되었다 할지라도, 마음을 계발해야만이 한계를 뚫고 나아갈 수 있다.
마음을 계발하지 않는다면 점점 살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게 된다. 왜냐하면 물질과 정신의 발달이 병행해야 할 텐데, 지금은 물질로만 치달아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물질이 인간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인간의 근본마음이 물질을 끌고 가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 마음을 모른다면 물질과학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기에 心性으로 되돌려 들어가야 한다.
과학의 바탕은 일체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아무리 많은 과학자들이 분야별로 다양하게 연구를 한다 해도 근본마음을 알아야만 계속해서 발전 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는 빛도 마음보다는 빠르지 못하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치게 되면 모를 것이 없고 닿지 못하는 데가 없다.
현대과학이 낳은 훌륭한 발명품들도 부처님의 위대하신 법력을 짐작도 하지 못하는 바가 많이 있다. 지금 현대과학이 맞닥뜨려 있는 한계도 마음의 신묘한 도리를 깨닫게 된다면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마음을 깨친 이들에게는 수성이나 화성, 목성, 금성 등을 가서 살펴본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불치병으로 분류되는 질병도 고치지 못할 바가 없고, 차원도 사차원이 아니라 시공을 뛰어넘는 초차원의 경지를 넘나들 수 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그런 일이 사람들을 미혹하게만 할 뿐 아무런 이득이 없음을 아시고 조심하셨던 것뿐이다. 마음의 힘을 간절하게 믿고 깨우쳐 들어간다면 육안으로 포착되지 않는 靈의 문제나 신의 문제까지도 자세히 살펴질 것이다. 마음법이야 말로 묘법 중의 묘법이다.
의학이 발달되었다 해도 마음의 도리를 모르기 때문에 문제를 30%밖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나머지 70%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요즈음의 과학은 보이는 현상계만을 다루고 있으니 전체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전체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보이지 않는 나머지 세계를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법을 계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학, 물리학, 천문학, 공학, 지리학, 생물학 등도 모두 마음을 통해 잠재의식과 현재의식이 계합되어 일심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연구를 완전히 해낼 수 없다.
인간이 유의 세계의 궁극에 이르러 무의 세계로 넘는 문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은 석가모니부처님만 가르치신 게 아니라 많은 성인들이 다 가르치셨다. 숨을 들이고 내쉬는 교차로에 삶과 죽음이 있듯이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지금은 거꾸로 돌아서 정신세계의 교차로를 넘어서야 한다.
지금 과학자들이 외계 생명체와의 전파 교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보이는 세계의 50%를 가지고 장차 보이지 않는 세계로 내디디려는 교차로에 놓여 있으니, 단순히 기계에서 나오는 전파를 통해 외계 생명체와 연락한다 함은 근본 도리를 모르는 처사이다. 모름지기 나를 떠나서는 통로가 막혀 있으니, 마음으로부터 나의 무선 전화를 가설해야 통로가 바로 트이고 연락이 된다. 그렇게 物理가 터지면 두루 보고, 두루 들을 것이며, 두루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 마음속의 통로를 알면 벽도 천장도 없으니 어디든지 닿지 않는 곳이 없고, 전체가 하나로 통하게 된다.
인간은 어떻게 현재의 모습으로 나오게 되었는가?
여러 가지 設이 있지만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대가 뭉쳐 사생으로 나투는 중에, 유전자의 진화력에 의해 구르고 구르면서 억겁을 거쳐 갖가지 體로 나투었기 때문이다. 축생이라 해서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게 아니고 인간이라 해서 인간대로 고정됨이 없으니 마음으로 자기의 체를 자기가 형성케 한 것이다.
사람들은 우주에 법망이 있다는 것을 모르나 법망은 엄연히 존재한다. 따라서 과학의 기술로 우주선을 띄울 수 있다 해도 법계의 허가 없이는 분명히 잘못되는 수가 있다. 이러한 문제는 마음법을 무시한 과학기술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팽이가 운동 중심이 잘못되면 똑바로 돌지 못하고 미치광이처럼 돌듯이, 은하계도 무전자의 삼각 받침대가 없다면 똑바로 궤도를 돌 수가 없다.
다른 행성에는 생명체가 없다고들 하는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명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세계인 이 지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생명들을 키로 까부르고 체로 걸러서 위로 던질 것은 던지고 아래로 보낼 것은 아래로 보낸다. 각 행성에서는 이렇게 각자 맡겨진 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공부를 한다면 나의 근본인 주인이 스스로를 보살피니 자기 본연의 정신을 빼앗겨 남에게 휘둘리지 않게 된다. 우리 인간도 낮은 차원의 다른 생물들에게 그래왔듯이, 인간 보다 높은 차원 세계의 생명들에게 실험 대상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만약에 지금까지 진화해오면서 갖춰진, 인간으로서의 모든 능력까지도 몽땅 빼앗긴다면 그래도 괜찮겠는가?
과거 미생물로부터 수억겁 년 동안 지금의 인간으로 진화해 오게 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농락을 당하면서 살겠는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또 인류의 앞날을 위해서, 수십 번 다시 태어날지라도, 수십억 년이 다시 걸리더라도 이러한 마음 도리를 모두가 알아야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지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어다니는 벌레들은 땅 넓은 줄만 알았지 하늘 높은 줄은 모른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이 지구 안에서만 살아, 지구 방식의 습에 젖어 지구식대로 생각하고 지구식대로 볼 줄만 알았지,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나가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다르게 볼 줄은 모른다.
예를 들어, 중세계인 지구에서 체를 갖고 진화해 왔기 때문에 체가 있어야만 생명이 존재하는 줄 알지, 체가 없어도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고는 생각을 안 한다. 또한, 많은 사람이 지구에 있는 것과 같은 공기가 있어야만 생물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보다 넓고 높은 의식 차원에 다다른 사람들은 다른 혹성, 다른 세계에 이러한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마음을 떠나서는 공부랄 게 하나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우주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들이 충만해 있다. 이 지구에만 우글우글한 게 아니라 다른 행성에도 우글거린다. 인체에 있어서 동맥, 정맥을 통해 피가 돌고 오장육부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하듯이, 은하계도 지구도 그렇게 빈틈없이 각각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렇듯 일체가 자기 맡은 바 역할을 잘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해 안정할 수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전체가 하나가 되어 돌아가는 것이다.
무전자 : 無의 세계와 有의 세계가 어울려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는 매개체이다. 물질계에서 유전자들이 형성해 놓은 것들을 무의 세계와 균형 있게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는 받침 역할을 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정신계에서 물질계로의 오고 감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해주는, 그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체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없으므로, 체가 없다는 측면에서는 무의 세계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이것이 오고 가며 작용하여 보여지는 곳은 현상계이니, ‘무의 세계에 속한다, 유의 세계에 속한다.’라고 구분지어 말할 수는 없다. 한편, 여기서 유전자란, 의학에서 사용하는 용어, ‘genome'이 아닌, 현상계(물질계)를 형성하고 돌아가게 하는 어떤 구성체를 뜻한다. 도저히 체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 모양을 규정지을 수는 없으나, 가느다란 형태, 또는, 그와 같은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진다.(대행큰스님의 무전자와 유전자에 관한 설명축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