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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큰스님 워싱턴지원 대법회 1998년 6월 7일

o心o 2011. 11. 15. 12:29

 

(앞부분 생략)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이 이 지구 바깥을 벗어날 수 있으며 공기 주머니 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또는 우리 몸 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이 중세계 안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은 체가 없는 겁니다. 마음은 체가 없어서 공기가 없어도 벗어날 수 있는 거죠. 우리 몸뚱이가 지구라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여러 생명들이, 미생물에서부터 천차만별의 생명들이 다 지구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안에서 대기권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죽어요. 그러나 이 몸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몸 안에 천차만별의 생명들과 의식들과 모습과 이게 모두 들어 있습니다. 들어 있는 이 생명들이 바깥에 나오면 또 죽습니다. 거기까지 한번 생각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몸속에 있는 생명체들이 누구입니까? 더불어 같이 사는 한 개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개체가, 우리가 마음을 먹는 데 따라, 이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자기 운명과 모든 것이 주어집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 자기 생명의 근본, 영원한 자기의 생명의 근본이 자기 몸을 형성시키기 위해서 정자 난자를 빌려서 이렇게 해서 삼합이 한데 합쳐져서 잉태가 되는 것입니다. 잉태가 돼서 나올 때 과거에 산 인연에 따라서 인과로 만난 인연들이 한 몸에 모두 살고 있습니다. 그 한 몸에 살고 있는 그 생명체들이, 즉 말하자면 이것을 다시 한 번 더 얘기해야 되겠습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주어지는 인과성이나 유전성이나 업보성, 세균성, 영계성 이 자체가 때에 따라서 거기 전부 주둔해 있는 겁니다. 그건 왜 그러냐? 바로 자기 보는 거 듣는 거 말하는 거, 남의 속을 아는 거, 자기가 어디서 나온 걸 아는 거,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오는 거, 이 오신통이라는 자체가 바로 이 모든 여러분의 몸에 주둔해서 항상 있는 것입니다. 거기 참, 천안통이라는 심안의 눈을 빼 놨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인해서 모든 것이 주어지는데 그것도 부처님께서는  도가 아니라고 그랬습니다. 보기만 하고 있어도 도가 아니요,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와도 도가 아니요, 남의 마음을 유리알 들여다보듯 알아도 도가 아니요, 내가 어디서 온 줄 알아도 도가 아니요, 심안으로 듣는 것만 해도 도가 아니요, 이것이 모두 도가 아니라고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이 오신통이라는 이 통 속에서 벗어나야 바로 대뇌를 거쳐서 사대로 통신이 되면, 사대로 통신이 돼서 바로 이 정수라는 그 자체, 그것을 우리가 지금 새로이 말한다면 자동적인 컴퓨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동적인 컴퓨터에서, 즉 말하자면 우리가 살고 말하고 행한 그 자체가 그대로 입력이 되는 것입니다. 입력이 되면 앞의 입력은 없어지면서 새로 입력이 들어가서 현실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건 실질적인 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저께 일도 알고 내일의 할 일을 생각하든가 합니다. 그런데 그 컴퓨터에 그렇게 차례차례 입력이 된 대로 거기에서 유전성도 나오고 영계성도 나오고 또, 즉 말하자면 세균성도 나오고, 모든 게 다 거기서 나오는 겁니다. 인과성이나 모두 인연에 따라서 그 입력이 된 대로 나오는 거죠. 그래서 그걸 가지고 우리는 업(業)이다. 고(苦)다 이런 말을 하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우리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그것을 없애려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자체가 나오는 대로 어떠한 좋은 일이 생겼다면 '주인공, 감사해.' 하고, 언짢은 일이 생긴다면 '너만이 해결할 수 있어.' 라고 한다면 그대로 그게 대뇌를 거쳐서 입력이 됩니다. 대뇌를 거쳐서 사대로 통신이 되면 바로 즉시 찰나에 정수에 입력이 되는 것입니다.

 

입력이 돼서 그것이 현실로 나올 때에 바로 거기다 되입력을 한다면, '거기다 놓는다면' 하는 소리가 입력이라고 합니다. '너만이 할 수 있어.' 하고 놓고, '해 주시오'가 아닙니다. '너만이 할 수 있어,지, 또 '너만이 지켜줄 수 있어, 너만이 이끌어 줄수 있어, 너만이 의사가 돼 줄수 있어.' 하고 모든 일거수일투족 다 이익 되게 거기다가 맡겨놓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 가지로 요약하는데 잘되는 거는 '감사해.' 잘 안되는 거는 굴려서, 즉 말하자면 '너만이 그걸 해결할 수 있어, 낫게 할 수 있어, 보디가드가 돼 줄 수 있어, 이끌어 줄 수 있어, 해결사가 돼 줄 수 있어.' 이 모든 거를 거기다가 놓고, 그렇게 굴려서 거기다 놓을 때 입력이 되는 겁니다. 연방 입력이 되면서 연방 없어지면서, 연방 입력이 되면서 없어지니 그릇은 항상 빕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이것이 영계성이나 유전성이나 또는 업보성이나 인과성이나 세균성이 없어질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생기죠.

 

아무리 이름과 형상을 믿고 기도를 해도 그것은 거기에 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근본 자리는 일체 우주 삼라만상 대천세계와 더불어 일체 만물만생이 다 거기에 통신이 되는 통신처니까, 죽고 사는 생사의 문제도 거기서만이 해결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모든 것이 우리가 이 생활을 할 때에 어떻게 해야만이 우리가 늠름하고 좀 여유있게 할 수 있는가, 여러분이 자랄 때 빼고, 늙은 후에 빼고, 살면서 얼마나 행복을 느꼈습니까? 행복이 얼마나 됩니까? 이것저것 잘못되고  이것저것 걱정하는 것 빼고 이것저것 다 빼고 나면 행복이란 그저 석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두 하늘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고 밀고 나갈 수 있는 그 백이 자기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 주는 겁니다. 마음이란 너무나 광대하고 무변해서 마음이라는 이름은 하나지만 마음이라는 이름 가지고 얼마나 많은 마음을 씁니까. 그래서 마음은 없는 게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음이 너무 많이 있어서, 그리고 돈도 안 가지고 쓰는 마음이라 그저 아무렇게나 그냥 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막 해 댑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마음은 항상 나를 유익하게, 말 한마디라도 유익하게 해야 합니다. 또는 부부지간에도 자식지간에도 모두 누구든 대신 살아 주는 사람  없습니다. 아파 주고 죽어 주고, 깨달아 주고 똥 눠 주고, 잠자 주고 또는 밥 먹어 주고 이러는 거 대신해 주는 거 보셨습니까. 이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기묘하고 미묘한지, 여러분은 자식들이 잘못되면 배울 시기에 배우지 못하고 저렇게 그냥 저런다고, 배울 시기에 못 배우면 뭐, 한국 사람들은 깡통을 차느니 뭐 어떻다고 욕을 합니다. 뭐, 깡통을 찰 녀석이라든가 너는 평생에 그럭하고 지내려느냐 하고 막 욕을 하죠.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욕을 하고 그렇게 하면 그대로 되는 겁니다. 그러나 남편이든지 자식이든지 아내든지 아무리 잘못한다 하더라도 '아, 이 세상에는 그냥 만난 인연이 아니다.' 이 세상 살아나가는 거 가만히 보세요. 금방에는 금이 있고 넝마전에는 넝마가 있고 깡통전에는 깡통이 있고 무쇠전에는 무쇠가 있습니다. 끼리끼리 말입니다. 상점에 가 봐도 사과는 사과끼리 놓여 있고 배는 배 대로 놓여 있고 끼리끼리 모두 놓여져 있습니다. 그게 보통 인연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다 인연에 따라서 만난 인연들인데 만날 탓을 해요. 자기가 이 세상에 났기 때문에 인연을 만난거지, 자기가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인연이 됩니까, 자기가 있으니까 만난 거 아닙니까. 똑같이 인연에 따라서 똑같은 차원에 따라서 만난 거죠. 그런데 남의 탓을 한단 말입니다. 당신이 망하게 그 따위로 하니까 망했다는 둥, 또 잘됐으면 내가 잘해서 잘됐다는 등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애정이 그렇게 있겠습니까. 그렇게 싸우는데. 점점 식어 가지. 그러니 행복은 없어지는 거죠.

 

행복을 누가 갖다 주는 게 아니죠.  행복은 우리가 만들어서 행복한 거죠. 그러니 그렇게 해서  우리가 끼리끼리 만나서 그런데, 난 항상 그렇게 얘기합니다. 싸움을 하고 온통 그러는데 여러 가지 소견입니다. 자식들도 부모가 싸우는 거 보고 그대로 배우거든요. 싸우는 것만 배우는 게 아니라 그 모두를 다 보지 않는 것 같고 듣지  않는 거 같지만 다 그대로 영향이 미친다 이 말입니다. 그뿐이 아니죠. 그렇게 하면 모두가 파산이 되고 또는 행복하지 못하니까, 예를 들어서 남편이 잘못했다면 아내가 '아, 이것도 끼리끼리 만나서, 내가 있으니까 저 남편을 만난 거니까 모든 게 내 탓이다.' 하고, 돌아오면 부드럽게 말해 주고 부드러운 행동을 해 준다면 그렇게 잘못하다가도 '아, 내가 이렇게 잘못을 하는데도 이렇게 부드럽게 해 주니....' 하면서 따뜻한 데로 고이게 마련이거든요. 그렇게 하고 또 부인이 그럴 때는 남편이 그러고, 자식이 그럴 때는 부모가 그렇게 하고요. 그걸 자식이 잘못한다고 부모가 '요놈의 새끼, 어디가서 자빠져 잤느냐, 어디 나가서 이렇게 있었느냐." 그러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죠.

 

행동으로 붙들거나 말로 붙들어서 그게 오는 게 아니에요. 마음으로 고장난 거는 마음으로 고쳐야지. 마음으로 '주인공은 둘이 다 똑같아. 너하고 나하고 둘이 아닌데...'하고 관하시란 말입니다. 영은 만개를 갖다가 한데 모아도 영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둘이 아니죠. 그러니까 벌써 자식이다 부모다 하고 전기가 가설이 돼 있는 것처럼 가설이 돼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 주인공에게 모든 것을 '자식과 둘이 아닌데 너만이 해결할 수 있잖아. 너만이 어디 가서든지 떳떳하게 살게 할 수 있잖아.' 하고 그렇게 관한다면 저절로 거기까지도 마음에 불이 들어와서 저절로 집에 돌아와서 착해질 수가 있다 이 소립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떠한 단체에서도 그렇고 어떠한 회사에서도 그렇고 모두가 그러한 마음으로 쓴다면 너무나 평화스런 세계가 될 겁니다. 아마. 지금 그렇게 말로 이렇게 하고 때리고 붙잡아다 그냥 조지고 이러니까 그것이 점점 더 강하게 나빠지는 거죠. 이것은 전부 마음의 조작입니다. 정수에서 나가는 게. 잘못되는 것도 마음이요 잘되는 것도 마음입니다. 마음의 조작이니만큼 마음으로 서로서로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건 빛보다도 더 빨리 연결이 됩니다.

 

빛은 가다가도 어떠한 연고가 생기지만 마음은 어디고, 은산철벽도 뚫을 수 있고 남의 마음도 같이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마음이 자식이나 남편이 정히 안되겠을 때 내 마음이 그쪽으로 투입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내 마음이 말입니다. 그렇게 관하고 '그렇게 너만이 할 수 있어.' 할 때에 바로 내가 남편한테로 들아갈 수도 있고 남편이 아내한테로 들어올 수도 있죠. 그래서 서로가 사랑하고 서로가 아주 특별한 인연이 되고 그러는데 어째 나만 그렇게 안되겠습니까.

 

모두가, 나쁜 사람이 생기는 것도 이 마음의 조작입니다. 돈이 있어도 도둑질하고 싶어서,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뭐, 죽일 것도 아닌데 죽이거든요. 또, 이게 마음의 조작이란 말입니다. 고가 있느니 집착이 있느니....그래, 고와 집착만 없으면 멸이 되고 이럴 것 아닙니까. 모두가 이 집착, 집착이 없으면 욕심이 없고, 그렇다면 고라는 거는 없어요. 모든 게, 모두가 우리가 만들어서 고라고 하는 거지. 보세요. 강물 흐르듯이 흘러갈 거를. 기껏 그냥 흘러갈 거를 붙잡는단 말입니다. '아이고 우리 남편이 이렇게 되고 우리 자식이 이렇게 됐으면 좋겠는데...' 그냥 이럭하곤 집착하고 그러니까 강물이 그냥 흘러가다가도 그냥그냥 가서는 걸려 버려요. 그러니까 안될 수밖에. 그 왜 안되겠어요? 마음은 체가 없어서 강물 흘러가듯 하는 건데. 우리가 한 발짝 떼어 놓으면 한 발짝 없어지고 한 발짝 떼어 놓으면 한 발짝 없어지는 이런 사정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고정된 게 하나라도 있습니까. 여러분이 볼 때 고정된 게 하나라도 됩니까. 이거 보면 저거 봐야 하고 저거 보면 이거 봐야 하고 이거 들었으면 저거 들어야 하고, 저사람 만나면 이 사람 만나야 하고 이거 했으면 저거 해야 하고 이게 매사가 하나서부터 열까지 다 고정된게 없이 한 발짝 떼어 놓으면 한 발짝 없어지듯이 그렇게 그냥, 말을 해도 벌써 내가 이렇게 말하는 대로 과거로 흘러 돌아갑니다.

 

 

                (이후 내용 첨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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